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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곳 국립대구박물관

불교

국립대구박물관의 중세문화실을 안내합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불교문화와 유교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실입니다. 불교문화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양식을 대표하고 조형미가 우수한 불교조각품과 불교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유교문화는 대구, 경북지역의 사원을 중심으로 사원에서 서원으로 옮겨가는 시대적 전환과 영남학파의 활동을 관련 자료를 통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유교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궁극의 목표인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강조한 ‘수신’, ‘제가’, ‘치국’을 전시개념에 도입하여 조선시대 사회 전반에 걸친 유교문화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의 불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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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내용

불상(佛像)은 불교교리에 의한 예배의 대상을 시각적인 조형매체로 표현한 것입니다. 넓게는 부처(佛)(여래(如來))는 물론 보살(菩薩), 나한(羅漢), 신장(神將) 등을 모두 포함하며, 좁게는 부처(佛)의 상만에 해당됩니다.

삼국 중 불교 수용이 가장 늦은 신라에서는 7세기에 이르러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조상 활동이 성행하였습니다. 반면 불교문화의 수입창구이자 신라불교의 보급 통로인 경북 북부지역은 일찍부터 불교문화가 성행하였습니다. 영주, 봉화, 안동, 군위, 구미 등의 여러 지역에 삼국시대 금동불과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마애불과 석불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경북지역에서 이른 시기부터 활발한 조상활동이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대표 전시품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이 상은 낮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머리 뒤에는 광배를 끼우는 촉이 있다. 손가락은 모두 뺨에 대고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있 다. 옷 주름은 같은 형태를 의자의 뒷면까지 반복적으로 표현하였다. 발 받침은 밑부분에서 솟아 나온 연잎을 조형화한 하엽좌이다.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

반가사유상은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상은 얼굴에 표정이 없고 몸체에 비해 머리 와 보관이 큰 편이다. 옷 주름은 형식화하여 표현하였고, 작고 야윈 손 가락을 뺨에 대고 있는 사유의 자세는 약간 어색한 편이다.

부처

부처

구리를 녹여 대좌와 부처를 따로 제작하고 돌을 결합하여 완 성한 불상이다. 대좌 윗면의 위쪽에 난 또 다른 구멍은 광배를 고정하 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관음보살

관음보살

전체적으로 근엄하고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 문 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불상으로 복잡하고 화려하게 장신구를 표현한 것이 큰 특징이다.

관음보살

관음보살

몸은 날씬하게 균형이 잘 맞으며, 옷은 몸에 얇게 밀착되 어 있다. 얼굴은 눈·코·입을 분명하게 표현하였으며, 미소를 머금고 있 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조각 수법이 뛰어나 삼국시대 후 기 금동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부처

부처

몸의 형태와 세부 표현이 부드럽고 단순하며, 옷 주름이 정리 되어 단아한 느낌이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두 어깨를 모두 덮은 가 사는 몸에 밀착되어 있다. 통일신라 초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는 중 요한 작품이다.

부처

부처

두 다리를 아래로 내려 의자에 앉은 자세로 오른손은 시무외 인,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였다. 민머리에 육계가 솟아있으며, 두 눈은 지그시 감아 명상에 잠긴 듯 하다. 대좌와 광배는 따로 주조해서 조합 한 듯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보살

보살

상체를 뒤로 젖히고 허리를 왼쪽으로 틀어 동세가 돋보이는 보살입상이다. 머리에는 보계가 있고, 이마 위쪽에는 보관을 끼웠던 홈 이 있다. 균형 잡힌 신체 모델링과 생동감 넘치는 표현 등 세련된 조형 미를 보이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8세기대의 보살상이다.

사자

사자

의성 관덕동 삼층석탑(보물) 기단 네 모서리를 지키던 석상이 다. 사자는 불법을 지키는 수호상으로 불상의 대좌나 탑, 석등, 승탑 등 불교와 관련된 석조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배 밑에 사자가 있고 그중 한 마리는 어미젖을 빨고 있어 매우 희귀한 모습이다.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

오른손으로 곧추 세운 왼손 검지를 감싸쥐는 일반적 인 지권인과 달리 양 손을 가슴 앞에 맞잡은 불분명한 형태의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태양의 빛처럼 불교의 진리가 우주 가득히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불상으로 지권인의 손모양을 취한다.

두 부처

두 부처

이불병좌상은 『묘법연화경』 「견보답품」의 내용 중 석가불 이 다보불과 다보탑 안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 한 것이다. 대전사 출토 이불병좌상은 대좌와 불상을 따로 만들어 결합 하였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불상의 복장 기록에 따르면. 1482년(성종 13)에 다밀지 의 정수사에서 삼존으로 제작하였다. 1729년(영조 5)에 경상좌도 칠곡 도호부 북면의 팔공산 대장사 운수암에서 중수하였으며, 이후 천주사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나무를 깎고 덧대어 모양을 만들고, 표 면에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혔다. 제작 연대가 확실하여 조선전기 불상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전시내용

부처의 시신을 화장(火葬)한 후 남은 뼈를 사리(舍利)라 하며, 이 사리를 안치한 무덤을 탑塔이라 합니다. 사리는 금·은·동·철·돌·유리·수정 등 여러 재질의 용기에 겹겹이 넣어져, 불상·구슬·장신구 등의 공양물과 함께 탑에 안치합니다. 대구, 경북 불교문화의 특징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탑 속에서 발견된 갖가지 사리갖춤(舍利莊嚴具)으로 대표되는 불교 공예품을 통해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과 김천 길항사 터 삼층석탑,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 등에서 발견된 사리함과 녹색 유리로 만든 사리용기, 그리고 사리와 함께 봉안된 각종 공양품들은 당시 통일신라 불교문화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 전시품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갖춤

칠곡 송림사 오층 전탑 중 2층 탑신에 있던 거북 모양 돌함 안에서 나왔다. 바깥 함은 집 모양이며, 금판을 오려 만든 섬세한 장식물을 붙였다. 함 안에는 녹색 유리잔과 병을 넣고 사리를 담았다.

갈항사 동서삼층석탑 사리갖춤

갈항사 동서삼층석탑 사리갖춤

758년(경덕왕 17)에 언적법사, 조문 황태후와 누이는 갈항사에 두 개의 탑을 세우고 자신의 바람을 담은 사리갖춤을 만들어 동탑과 서탑에 봉안하였다. 그로부터 27년이 지 난 후 누이의 아들은 원성왕이 되었다. 갈항사지 동·서삼층석탑은 1916년 2월 12일에 도굴범들이 탑의 일부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그 해 6월에 탑을 조선총독 부박물관으로 옮겼다. 옮기는 과정에서 사리갖춤을 발견하였다.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갖춤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갖춤

신라 민애왕을 추모하여 세운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에 봉안한 사리갖춤이다. 금동제 사방불판 은 중앙의 여래를 중심에 두고, 양옆에 합장한 보살을 배치한 형식이다. 금동판의 양옆에 각각 4개의 구멍을 뚫은 뒤 연결하여 함으로 제작하였 다.

동화사 금당암 서삼층석탑 사리갖춤

동화사 금당암 서삼층석탑 사리갖춤

대구 동화사 금당암 삼층석탑 에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납석으로 제작된 항아리와 석탑들이다. 납석 은 엽랍석을 주성분으로 하는 광석을 말하며, 곱돌이라고도 한다.

봉서리 삼층석탑 사리갖춤

봉서리 삼층석탑 사리갖춤

문경 봉서리 삼층석탑 사리갖춤은 청자 완, 목제 금칠합, 수정사리호, 비단 조각, 유리구슬, 수정구슬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이 유물은 일본이 1966년 반환한 문화재이다.

전시내용

불교공예품은 불교 의식과 신앙생활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쓰임새에 따라 의식구(儀式具), 공양구(供養具), 장엄구(莊嚴具)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의식구는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도구로 종(鍾), 쇠북(金鼓), 운판(雲板), 목어(木魚) 등 소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교화하는데 쓰였던 범음구(梵音具)와 바라, 목탁(木鐸), 요령(搖鈴), 금강저(金剛杵) 등이 있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때 사용하는 공양구로는 정병, 향로, 꽃병, 촛대, 발우(鉢盂) 등이 있습니다. 부처의 정토세계를 재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엄구는 종류가 가장 다양합니다. 사찰의 전각을 장식하는 번(幡), 당(幢), 불단(佛壇), 닫집(天蓋)을 비롯하여 사리봉안을 위한 사리갖춤이 있으며, 넓게는 사찰건축에 쓰였던 기와와 전돌 등도 포함됩니다.

대표 전시품

용머리

용머리

용은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라보며 여의주를 물고 있다. 목은 비늘과 갈기를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사찰에서 사용한 용두보당의 예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통일신라 전성기의 금속공예 기술을 잘 발휘한 걸작이다.

종

안동 신세동에서 출토된 고려 12~13세기에 제작된 종이다.

「기축」이 새겨진 종

「기축」이 새겨진 종

범종은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또는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와 보살상이 새겨진 부분 사이에 종을 만든 정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새겼다. 새긴 글에 등장하는 보주는 현재 예천의 고려시대 지명이며, 시완사는 종을 사용한 절의 이름으로 보인다. 기축은 종의 제작 시점이 1169년이거나 1229년임을 나타낸다.

「황통 3년」이 새겨진 쇠북

「황통 3년」이 새겨진 쇠북

북을 치는 곳은 꽃잎과 씨주머니를 돌출 되게 새겨 넣었다. 가장자리는 구름의 기운을 형상화한 무늬를 장식하 였으며, 옆면에는 종을 걸기 위한 고리 2개가 있다. 또 1143년(황통 3) 에 덕산사에 걸어 놓았다는 사실과 구체적인 무게 등의 내용을 옆면에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함평궁주」가 새겨진 향완

「함평궁주」가 새겨진 향완

향완은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 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향로로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다. 악취나 해충을 쫓 아내는 향은 고대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지니던 필수품이었다. 향완은 불전에서 향을 피우는 공양구로 많이 사용하였다.

정병

정병

정병은 인도에서 승려가 여행할 때 지니던 물병에서 유래하 였다. 부처님 앞에 맑은 물을 담아 올리는 공양구였다. 고려시대에는 향 로와 함께 중요한 불교 공양구로서 많이 만들어졌다.

금강령

금강령

금강령은 법회에서 의식을 행할 때 흔들어 소리를 내는 도 구이다. 고려 후기 원나라에서 유입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아 제작 하였다.

금강저

금강저

금강저는 고대 인도의 무기에서 유래한 형태로 번뇌를 깨 뜨린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밀교 법구이다. 이 금강저는 삼고저로 손잡이 부분을 연꽃모양으로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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